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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화한 성품과 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았으며 황하강의 범람을 피하기 위해 마을을 새로운 곳으로 이전시켰다. 새로운 마을은 상양촌(常陽村)이라는 곳으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 도랑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진씨일족의 인구가 번성함에 따라 진가구(陳家溝)라고 바뀌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진가구 이름의 유래이다. 직역하자면 진가구는 "진씨일족이 모여사는 작은도랑" 이라는 뜻이 된다.

지형적으로 진가구 일대의 대부분이 황하로 흐르는 도랑이 많으며 실제로 진가구 주변의 많은곳이 "溝: 작은 도랑" 라는 글자가 마을이름에 들어가 있다. 진씨일족에 대한 문헌적인 자료는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의 문서자료는 9대 진왕정 (1600-1680) 시대로부터 찾아볼 수가 있다. 진씨일족의 문헌에는 이 같은 기록이 있다. "진왕정은 명나라 말기 사람으로 뛰어난 무술가이며 학자였다. 그예 무예에 대한 모든 원칙들을 습득한 후, 그의 지식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갔다. 이것이 바로 진씨일족의 독특한 기예가 되었다." 많은 태극권 연구가들과 수련자들은 9대 진왕정을 실질적인 태극권의 창시자로 간주하고 있다. 허나 진가구인들은 시조 진복 때부터 태극권의 비결이 전수되었을 거라고 여기고 있다.

14대 진장흥은 선조의 수련체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켰으며 처음으로 진씨일족이 아닌 외성을 가진 이에게 진씨태극권을 전했으니 그가 바로 양씨태극권의 시조인 양로선이다. 양로선은 후에 "양무적(楊無敵)"이라 불리우며 태극권이라는 이름을 천하에 알렸고 본인의 깨달음을 승화시킨 태극권을 창시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현존하는 양씨태극권의 모체이며, 양로선은 이것의 토대를 진씨태극권에서 심화, 발전시킨 것이다. 실제로 진씨태극권과 양씨태극권의 동작 및 명칭은 유사한 것이 많다.
그것은 바로 “노가일로(老架一路)" 와 "노가이로(老架二路)" 이며 태극권 이라는 이름은 양로선이 베이징으로 출현한 후 붙여진 이름으로서 그 전에는 "和拳" 혹은 "感覺拳"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으며 진가구 자체에서는 "功夫架"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태극권이라는 이름은 이 권법의 모체이론이 "蔭陽" 사상에 기초를 두었고 극한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수련법이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極"에 "太"자를 더하여 "크게 다하다" 라는 뜻을 가진 권법으로, 이 권법의 극한의 경지에 이르면 이른바 "太極"이라 할 수 있는 千變萬化의 대응이 가능한 武藝가 되며, 또한 수련법 자체가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가 담긴 명칭이 된 것이다.

진장흥노사가 전승, 발전시킨 태극권은 도가의 토납법과 중의학의 경혈이론 그리고 태극의 음양사상에 기반을 두었으며 태극장권, 포추, 추수, 각종 무기술들이 주를 이루었다. 현재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수련법이 전해지고 있는데 맨손으로 하는 수련법은 노가일로(老架一路), 노가이로((老架二路; 일명 ), 그리고 신가일로(新架一路)와 신가이로 (新架二路, 일명 )가 전해지고 있다.

두 명이 수련하는 태극권 추수와 병장기등이 진씨태극권 전통수련방식에 계승되고 있으며 정통태극권이라 함은 "강유상제 쾌만상간 (强柔相濟 快慢相間)"을 겸비해야 한다. 그 이유는 陰陽은 끊이지 않고 변하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태극권이 느리게만 수련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그 것은 완전하게 태극이론을 정복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태극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强柔와 快慢의 "變化", 즉 蔭陽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끝을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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